실향민이셨던 아버지는 의지와 성품이 올곧으셔서 줄곧 가난하셨다. 그런 살림살이를 떠맡은 어머니는 아픈 다리로 행상을 다니셨다. 부모님을 온종일 기다리던 늦둥이 막내딸인 나는 항상 외로운 소녀였다. 학교에 간 두 언니를 기다리며 꽃과 나무, 곤충들과 이야길 하다가 지루해지면 기다리는 일이 즐겁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젊은 엄마 품에서 어리광부리던 또래 친구가 놀아주지 않아 홀로 사금파리로 소꿉놀이하며 친구이름 부르며 펼치던 상상의 나래가 학창 시절로 이어져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만들어 주었다. 허나 꿈을 펼쳐 볼 새도 없이 나는 충청도 양반댁 종갓집 맏며느리가 되어 벙어리 삼 년, 봉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의 고된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종부로 아내와 어머니로 남편과 세 아이를 키우는 성실한 삶에서 얻어지는 행복감에 만족하려고 노력해도 왠지 가슴속 허기는 메워지질 않았다. 꿈에 그리던 시인의 길에 대한 간절함이 식지 않고 더 커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를 다잡기 위해 오십이 되면 제 2의 인생을 살겠노라 다짐했었다.
나하고의 약속을 위해 틈틈이 써 두었던 시들을 정리해 정식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오로지 시에 대한 열정과 열망으로 겁 없이 들어선 시인의 길은 두려웠지만 나는 비로소 존재의미를 찾았다. 한 편의 시를 완성한 후의 전율과 세상을 향해 시로 말을 대신하고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이 너무 행복하기만 하다.
시인이 되고 보니 그리운 북녘 고향 땅을 밟지 못하시고 염원하시던 통일도 못 보신 채 세상을 뜨신 아버지가 더욱더 그리워진다. 그 통한이 전이되어 이산의 아픔과 통일, 층층시하의 종부살이로 얻은 삶의 시련과 부부간 애증이 내 시의 텃밭임을 깨달았다.
내 이름 석 자를 새겨 넣은 첫 시집을 상재하며 감격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겠다. 부족한 나의 시들이 초라할지라도 용기를 낸 커다란 이유는 오랜 꿈을 이루고 싶은 갈망과 그동안 착하게 열심히 잘 살았노라,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로 값진 선물임을 밝혀두련다. 앞으로 시인으로서 펜을 꼬옥 쥐고 수준 높은 작품에 도전하며 한발 한발 나아가련다.
지금까지 햇병아리 시인의 걸음마에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신 존경하는 문학의 멘토 자연(自然) 김경희 선생님과 인자하신 눈길로 격려해 주시는 문단의 대원로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씀으로 용기를 주신 귀한 지인 분들, 변함없는 다정한 친구들, 무조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에게 기쁨을 전한다.
― 고선자, 자서 <수준 높은 작품에 도전하며>
■ 고선자 시인
△자연문학회 사무국장. 한국창작문학낭송협회 홍보국장
△한국문인협회, 구로문인협회, 세계시문학, 문예사조 회원
△세계시문학 문학상 수상
△시집 『꽃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