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는 학생의 스승이었다. 가정에서는 한 여자의 지아비이며, 세 자녀에게는 어버이였던 문태섭 박사의 생애를 회고하는 시점에 밖은 흰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바람 소리가 스산한 매듭 달 연말이다.
혼자 사는 엄마를 염려한다는 명분으로 합가를 하러 딸이 우리 집으로 이사하는 과정에 집수리를 한다. 가구를 버리고 내 추억이 깃든 살림살이들이 버려진다. 아깝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버리기에 동참한다. 세 아기를 기르고 짝을 찾아서 손자 손녀까지 태어났으니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생활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은 건강이다. 혼자 살면서 가장 싫은 시간이 살려고 먹는 혼자 먹는 끼니다. 독거 인이 나만이 아니지만 대부분 나와 비슷하게 참으로 싫은 시간이다. 음식을 해서 먹는지 마는지 딸이 별로 도움을 주지를 못 할 것이라 여기지만 노약자의 삶이 언제 아플지 모르는 불안감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내가 그이와 살아온 세월은 약 반세기이지만 공부를 마치기까지와 투병을 합치면 반밖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사회생활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무덤덤하게 자녀들을 키우며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 술을 잊을 수가 없다. 술이 술을 먹다가 술에 먹혀서 요즘 세상치곤 빨리 세상을 버린 남편은 그 흔한 카드 한 장 쓰지 않고 핸드폰도 사용하지 않으며 자동차 운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면허증도 없다. 오로지 교수로서 학생들 지도가 삶의 전부이고 술이 그가 즐기는 유일한 낙이었다고 본다. 뒤늦게 골프를 배워서 즐기기는 했지만 골프를 너무 열심히 해서 심장에 무리가 갔는지 모른다. 골프를 너무 많이 연습하면 왼쪽에 있는 심장에 무리가 가서 심장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골프장에서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두 번째 홀에서 기권을 하고도 응급실에 가지 않고 나에게도 숨기며 술을 마셨던 그이는 술을 너무 좋아하다가 기나긴 투병에 들어가서 서러운 삶을 마감하였다. 오늘은 정들었던 골프채 세트를 나란히 기증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골프를 저 세상에서 누구와 치실까 생각하면서 그가 퍼팅을 연습하던 실내 연습 기구도 함께 보냈다.
그는 학자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는 교수다. 수많은 논문이 학술지에 발표되고 그의 제자들이 걸출한 사회의 일인자들이 되어서 전국 각처에서 활약하고 있다. 문강회는 그이의 사랑하는 제자들의 카페 이름이다. 문은 그의 성에서 따오고 강은 강구조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이의 현역 시절부터 이 세상을 떠나가는 순간의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함께한 사랑하는 제자들을 잊지 못하고 기리면서 그이를 회고한다. 몇몇 학생은 학부에서부터 박사학위 취득까지 그리고 결혼식에서 주례도 맡았던 제자도 있고 나도 그이와 먼 시골까지 동행하여 결혼식에 참석한 기억이 있다. 공학 박사 특유의 서툰 주례사가 거의 같은 내용이라서 다음 말을 알아버리는 에피소드를 어이 잊으랴. 그것조차도 순수한 그이의 성품이라 감히 표현한다.
박사과정에서 제일 처음 학위를 받은 P 교수는 국립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고 그의 가족들과 호텔 뷔페에서의 축하연에 기독교 가정인 가족들 중에서 주인공 어머니가 연세에 비하여 젊어 보인다고 하니까 주님의 일인 전도를 해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던 일이 생각난다. 자녀를 두고 고향에서 후학을 기르는 그 교수도 이제는 정년을 가까이 두고 있을 게다. 공부를 하고 연구한 학문을 제자에게 전수하는 직업은 보람도 있고 아름답지 않은가. 그 길을 가기 위해서 나의 아들들도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길러내는 직업을 가지도록 노력했다. 아빠의 유전자가 아들에게 흘러갔다는 생각은 아들의 교수 생활에 남편과 닮은 점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추모사를 써 주신 이리형 교수님과 김규석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박성무 박사와 문강회 식구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추모시를 써 주신 이양우 박사님과 <‘회고록’에 부쳐>를 써 주신 윤석환 박사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문 박사에게 노래를 들려주면서 병고의 고통을 덜어주었던 강정아 가수가 <‘회고록’에 부쳐>를 써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 <머리말>
머리에 두는 글
제1부 문태섭 교수를 기리다
◆ 추모시
이양우 | 임이시여! 무엇으로 위로해 드리리까
윤석환 | 우리 인연 깊었네
◆ 추모비·시
김은자 | 만추의 가시버시
◆ 추모사
이리형 | 고 문태섭 교수를 추모하며
김규석 | 故 靜浦 문태섭 교수와 함께 한 시간들을 뒤돌아보면서
박성무 | 형님 문태섭 교수님을 회고하며
제2부 문태섭 교수 수제자들
박일민 | 정년퇴임 회고사
오영석 | 선생님 전 상서
윤명호 | 문태섭 교수님과 함께한 구조공학 35년
안형준 | 너무나 많은 사랑
신태송 |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립습니다 ~~~
차광찬 | 스승과 제자 인연
윤기영 | 교수님의 향기가 그립습니다
금동성 | 사랑스런 나의 교수님 보고 싶은 나의 교수님
조시환 | 대학원 시절의 교수님에 대한 기억
김남수 | 논문기
오상훈 |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신 교수님을 추모하며...
유영찬 | 문태섭 교수님을 생각하며
최홍배 | 문태섭 교수님과의 첫 만남
제3부 문태섭 교수 가족
임자! 우리 잘 살았지! _ 초연 김은자
제4부 문태섭 교수 추억의 앨범
포토
사부곡 | 불꽃은 영원하리 _ 초연 김은자
제5부 ‘회고록’에 부쳐
강정아 가수 | 형부를 추모하며
윤석환 박사 | “故 문태섭 교수님!” 아니 “매형, 잘 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