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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어느 날 문득 잠에서 깨어나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시인(詩人)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려서부터 시를 접하고, 시를 읽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름대로는 시의 깊이를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고, 내가 쓴 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평생을 시를 써오면서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시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 시를 배워보지도 못한 내가 쓴 시가 과연 독자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 수가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평생을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온 어부가 어느 날 시인으로 등단은 했지만 시인이란 이름이 어쩐지 어색하기만 하였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내어놓기에는 조금은 부족함을 나 자신이 느낀 것은 사실 이었다. 어쩌면 몸에 맞지 않은 남의 양복을 빌려서 입은 것 마냥 어색하고 불..
어느 날 문득 잠에서 깨어나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시인(詩人)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려서부터 시를 접하고, 시를 읽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름대로는 시의 깊이를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고, 내가 쓴 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평생을 시를 써오면서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시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 시를 배워보지도 못한 내가 쓴 시가 과연 독자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 수가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평생을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온 어부가 어느 날 시인으로 등단은 했지만 시인이란 이름이 어쩐지 어색하기만 하였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내어놓기에는 조금은 부족함을 나 자신이 느낀 것은 사실 이었다. 어쩌면 몸에 맞지 않은 남의 양복을 빌려서 입은 것 마냥 어색하고 불편하여 어느 자리에서나 누구에게 나를 소개할 때는 시인이란 이름 앞에 어부(漁夫)라는 명칭을 붙여 “어부시인 누구입니다.” 하고 멋쩍게 소개를 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 시를 읽어주신 많은 독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내 시를 읽어주시고 내게 격려를 주신 분들이나, 세 번째 시집을 읽어주실 분들께서는 세상에서 제일 무식한 시인이 쓴 시를 읽게 되는 것이니 여간 죄스럽고 미안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저의 무식한 시를 읽고 미숙한 점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지적하여 고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평생을 영일만을 기대고 의지하면서 살았다. 나와 우리 가족의 생계가 영일만에서 이루어졌다. 이제는 어부로서의 바다와 맺었던 인연도 서서히 거두어들일 때가 된 것 같다. 흘러간 세월에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것은 없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은 있다. 지금부터라도 남은 인생 열심히 시를 배우고 닦아서 독자 여러분의 가슴을 씻어 내릴 수 있는 깊은 향기를 전해 드리고 싶다.
조금은 미숙한 시였지만, 나의 진실 된 삶이 녹아든 시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평생을 살아온 바다, 저 푸른 영혼 위에 작은 발자국으로 남을 내 인생을, 연민(憐愍)으로 묻어놓고 그 세월 돌아보면서 그 세월에 시혼을 담아 건져 올릴 것이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했던 동료 어부들의 가슴에 묻혀 있는 삶의 애환들을 조금은 풀어줄 수 있는 그런 시로 그들의 마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 김근이, 시인의 말(책머리글) <세 번째 시집을 내면서>
■ 김근이
△경북 포항 호미곶 출생(1941)
△《문학공간》 시(2006) 《문학미디어》 수필(2008)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시인연대 회원△시집 『찔레꽃 피는 날과 바람 부는 날』,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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