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이혼 후 할아버지 집에 맡겨진 소년은 압해도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면 소를 몰고 나가서 꼴을 베고, 소에게 꼴을 먹이는 일이 소년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공부보다는 땔감을 구하고, 돼지를 돌보는 일이 생업에 더욱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오른쪽 다리 소아마비, 몸이 성치 않아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슬픈 일이 많았을 때, 집 뒤편 산등성에 올라 저녁놀을 바라보며, 엄마를 목 놓아 불러보며 눈물을 가슴에 담아보기도 했습니다.
이때, 소년은 국어책의 시조와 시를 외우며 삶의 위안을 느끼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시를 낭송하면서 어려웠던 삶을 잠시 잊고, 시의 주인공이 되어 엄마도 만날 수 있고, 완전한 두 다리로 뛰어다닐 수 있고, 시를 읊조리며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황홀경을 맞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써온 시(詩)들을 분석해 보니, 나의 시의 원천은 불편한 나의 ‘오른 다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소아마비 다리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하였고, 대학졸업 후 필기시험에는 합격하고, 면접에서 매번 낙방했을 때 불편한 ‘오른 다리’를 죽도록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오른 다리’는 나에게 ‘∼함에도 불구하고’라는 삶의 절대 감사를 몸에 스며들게 했고, 늘 주어진 환경이 하나님이 주신 최선의 환경이라는 절대 긍정을 만들게 했습니다.
공기로 가득 찬 풍선의 매듭을 조금씩 풀어내듯 나에게 ‘시(詩)’는 사회생활에서 오는 긴장을 탈출시키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 천동암, 책머리글 <시인의 말> 중에서
천동암 시인은 맑고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 아름다운 심성과 함께 긍정적 사고를 지닌 사람이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인생의 자산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천 시인과의 인연은 필자가 발행하는 계간 《한국작가》 신인상에 천 시인이 당선된 것이 계기였다. 그후 한국작가 출신동인들의 모임인 작품 품평회가 매월 있는데, 그때마다 써온 천 시인의 작품을 눈여겨보면서 속으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 구석이 있었다.
아직은 시적 완성도나 기교에서 미흡한 구석이 조금은 드러나긴 해도 시가 지니고 있는 감성이나 진솔한 언어와 시의 행간에서 암시하는 상징적 의미의 형상화는 독자에게 흡입력 있게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그 진솔한 언어 속에 담긴 표현되지 않은 트라우마에 대한 긍정적 인식으로 창출되는 놀라움이 있고, 아울러 앞서 말한 긍정적 의미는 천 시인에게 있어서는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이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 가슴 저리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아픔을 받아들이며 오열하는 가슴은 시인 감성에 앞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는데 이런 휴머니즘적 요소 또한 천 시인이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첫 시집 『오른다리』를 읽으면서 시를 떠난 평소의 천 시인은 밝고 맑은 미소를 지니고 있는데, 시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삶과 인생 그리고 일상에서의 모습은 많은 마음고생과 갈등을 겪었으면서 감성의 물줄기가 끊임없이 헹가래치고 있음을 발견하여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오기도 했다. 이러함에도 흐트러짐 없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시를 통한 마음의 치유로 미래를 향해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첫 시집 『오른다리』 상재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끝내 시를 지키고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가길 기원하면서 이 시집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집이 되길 바라고 싶다.
― 김건중(≪한국작가≫ 회장·소설가), 서문 <긍정적 삶의 아름다움>
■ 천동암 시인△전남 신안군 압해도 출생
△단국대 영문과 졸업. 중앙대 경영학 석사. 한국해양대 경영학박사. 방송통신대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 석사과정 재학
△≪한국작가≫ 시 등단(2010)
△양주문인협회 편집국장△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코카콜라, DHL Korea를 거쳐 삼성전자 재직
△시집 『오른다리』
△일반서 『국제물류론』, 『창고보관운영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