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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날들의 이별

책머리에 어머니는 여든이 넘으시더니 같은 말을 여러 번씩 반복하신다. 전에 없던 일이다. 그런 어머니를 뵈면서 나는 세상 일들이 허무하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 내가 느끼는 시간과 공간 역시 어머니의 착각 같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작년 혹은 재작년이거나, 대전에서 일어났던 일을 서울에서 일어난 일로, 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광주에서 있었던 일로 혼돈 속에 가두는 것은 아닌지. ‘언제’건 ‘어디’건 그게 뭐 대단한 것이랴, 본질이 중요할 뿐인 것을. 본질, 인생의 본질, 우주의 본질, 목숨의 본질.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몽롱과 환상으로 이어져 미혹하게 되는, 그러나 나는 이것 때문에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시를 포기할 뻔했..
책머리에 어머니는 여든이 넘으시더니 같은 말을 여러 번씩 반복하신다. 전에 없던 일이다. 그런 어머니를 뵈면서 나는 세상 일들이 허무하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
내가 느끼는 시간과 공간 역시 어머니의 착각 같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작년 혹은 재작년이거나, 대전에서 일어났던 일을 서울에서 일어난 일로, 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광주에서 있었던 일로 혼돈 속에 가두는 것은 아닌지.
‘언제’건 ‘어디’건 그게 뭐 대단한 것이랴, 본질이 중요할 뿐인 것을.
본질, 인생의 본질, 우주의 본질, 목숨의 본질.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몽롱과 환상으로 이어져 미혹하게 되는, 그러나 나는 이것 때문에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시를 포기할 뻔했던 적도 있었다.
바람이 분다.
바람에 나뭇잎이 반짝인다. 반짝이는 나뭇잎의 빛살이 음악 같다.
나는 이대로 ‘몽롱’과 ‘환상’ 속에 빠져들 것 같다. 문득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다. 이렇게 마음이 편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어리석게도 난 지금 행복 같은 것을 조금 느낀다.
― 이향아, <책머리에>
● 이향아 시인
△충남 서천 출생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현대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기독문인협회 회원. ‘기픈시’, ‘동북아기독작가회 회장
△호남대 명예교수
△경희문학상, 시문학상, 전라남도 문화상, 광주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미당시맥상, 창조문예상 등 수상
△시집『온유에게』, 『화음』, 『어머니큰산』, 『흐름』, 『오래된 슬픔 하나』, 『물푸레나무 혹은 너도밤나무』 등 20권
△수필집 『종이배』,『쓸쓸함을 위하여』 등 15권
△문학이론서 『시의 이론과 실제』,『한국시, 한국시인』, 『창작의 아름다움』 등 7권과 기타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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