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느닷없이 손용상 소설가를 달라스에서 만나게 되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손용상 작가는 이곳에 오자마자 지역 언론사에 몸담고 있다가 얼마 후 주간지 ‘코리언 저널 달라스’을 인수하여 사주(社主)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틈틈이 글을 신문에 올리기는 하였으나 글쓰기 보다는 신문 일에 전념 하는 듯 했다.
그때 그는 아마도 미국에서 빨리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젖어있었던 듯싶다. 그러나 그는 소설가일지언정 사업가는 아니었나 보다. 그가 운영하던 주간지가 경영난에 휘말리면서 그는 10년을 못 채우고 그의 사업을 잃었다. 사업을 잃었을 뿐 아니라 건강도 잃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였을까. 그러나 그에게 오롯이 남아있는 것이 있었다. 그의 문학이었다. 그가 어려움 속에서 필사적으로 거푸 잡은 것이 바로 그의 문학이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가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손용상 소설가는 1973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방생(放生)’ 당선으로 등단, 대학 졸업 후 당시 월간 ‘세대’라는 잡지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유수 문예지 등에 단편 소설을 발표하여 당시의 국내 문단에는 그런대로 낯설지 않았던 글쟁이였다. 하지만 그렇듯 산문으로 출발한 그였지만 도미 후 지난 몇년간의 <사모곡> 연작에서 보면 그는 소설가로서 보다는 오히려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가슴에 응고된 듯한 언어를 풀어내는 길은 라르고(largo)의 느리고 긴 언어가 아니라 급류를 타고 한꺼번에 토설하는 알레그로(allegro)같은 시어(詩語)로 주변 독자들에게 다가가 있었다.
― 김수자(재미소설가), 서문 <손용상의 사모곡(思母曲)을 읽고> 중에서
■ 손용상 소설가
△필명: 손남우 (孫南牛)
△경남 밀양 출생(1946)
△경동고,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1974)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방생> 당선(1973)
△《문예감성》 제3회 시조부문 신인상(<세월단상> 외) 당선(2011)
△한국문인협회, 미주한국문인협회(소설가협회) 회원
△제5회 경희해외동포문학상 수상(2011, 단편 <베니스 갈매기>)
△전작장편(掌篇) 『코메리칸의 뒤안길』(2011)
△단편집 『베니스 갈매기』(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