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편소설 ‘도적님과 여인들’은 유럽 여행 중 우연하게 만난 중년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이른바 복고조의 멜로 애정소설이다. 스토리는 생판 픽션이 아닌 어느 정도는 내 젊은 시절의 체험에서 따 왔고, 더하여 주변에서 듣고 보았던 얘기를 근간으로 적당히 초를 치고 양념을 발라 구운 소설이다. 어쩌면 7-80년대 시절의 진부한 테마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에서 사람과 사람끼리 만남의 인연은 서로가 ‘좋고 싫음’에 큰 이유가 없다. 일테면 어느 날 우연히 서로 만나 전기가 통하거나 또 헤어지는 현상은 ‘좋으니까’ 만난 것이고 그러다 또 ’싫으니까‘ 갈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지극히 계산적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 생판 처녀 총각이 아닌,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적당히 경험해본 중년의 남자와 여자들의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은 특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적님과 여인들’은 요즘의 일부 소설처럼 독자들의 정신을 어렵고 혼란하게 만들지 않았다. 일부 비평가들 말처럼 ‘인상 깊은 개성적인 문체의 미학을 추구’ 하거나, 소설에서 사랑과 배신과 아픔과 극복, 그리고 심신의 쾌락을 전달하는데 까지도 표현이나 은유를 어렵게 배배 꼬아 자신의 현학(衒學)을 과시함으로써 독자들을 헛갈리게 만드는 일은 가능한 한 배제했다. 그냥 문장이 매끄럽고 내용이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되어 끝날 때 약간의 메시지가 뇌리에 박히든가 혹은 입가에 조그만 미소라도 번진다면 그 ‘소설은 낫 벳(not bad)’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시선은 글을 어렵게 쓴다고 더 잘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건 현란한 글 솜씨를 자랑하는 일부 평론가들에게 맡길 일이고, 암튼...독자들이 제 얘기를 끝까지 읽어주고 따뜻한 미소가 있기를 기대한다.
― 손용상, 책머리글 <작가의 말>
● 손용상 소설가
△필명: 손남우(孫南牛). 경남 밀양 출생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조선일보신춘문예 소설 당선(1973)
△경희해외동포문학상, 미주문학상, 고원문학상, 재외동포문학상(우수상) 수상
△한국·미주문인협회(소설가), 달라스문학 회원
△소설집 『베니스 갈매기』, 『똥 묻은 개 되기』
△중편소설 『꼬레비안 순애보』, 『이브의 능금은 임자가 없다』
△장편소설 『그대속의 타인』, 『꿈꾸는 목련』
△전작장편(掌篇) 『코메리칸의 뒤안길』
△콩트·수필집 『다시 일어나겠습니다, 어머니!』
△에세이집 『우리가 사는 이유』
△에세이·칼럼집 『인생역전, 그 한 방을 꿈꾼다』
△시·시조집 『꿈을 담은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