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입문한지 50여년 그리고 시조에 눈을 뜬지 어연 30여년이 되었으나 아직까지 성에 찬 시조 한편을 낚지 못한 채 빈 시조 낚싯대만 흔들면서 시조시인으로 행세해왔던 처지를 가상히 여기어 문단에서 달래기라도한 듯 각종 시조문학상을 주기에 과연 내 입장에서 이러한 상을 받을 능력이나 필력이 되는지 자문해 본다. 그러나 나름대로 시조정원에 정성을 다하여 열심히 가꾸다보니 분에 넘치는 각종 시조상도 수상할 수 있었다고 자위를 해본다. 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은 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즐겁고 행복한 일이며 염치가 없어도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시조는 3장6구 12소절로 이루어진 구조가 다른 어떤 정형시에도 볼 수없는 정제된 형식이어서 세밀한 내구적 설계에 따라 직조 되어야 하는 치밀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얼인 시조는 심상의 결합에 융합하는 형상화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시조가 갖는 난해성 때문일 것이다. 시조의 새로운 화법을 갈구하고 삶에 대한 환유로 인생에 “아포리즘”을 결속해 보려고 안간힘으로 시도해 보았다.
인간은 변화 그 자체를 생에 대한 영구적 조건으로 받아드려야 한다는데 깊이 인식하고 시조에 기대어 살아오는 동안 허기진 영혼의 심정적 빈곤에 국한하지 않고 내면적 빈곤과 외부의 여러 상황에서 미치는 모두의 위로를 갈구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 문학적 목표 없이 창작하는 것은 잡필이나 끈적거리는 낙서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시인은 절대적 사유를 착상하여 고정된 현상을 극복하고 그 속에서 주장하는 모든 고정된 개념과 상치되는 실존적 상황과 조우한다는 생각이다. 시어는 수많은 이질의 사물들을 연결하여 실제 상황에 연결시킴으로서 새로운 이미지로 생명력을 탄생케 한다. 시작(詩作)의 목적은 사물의 형태에 본성을 발견하면서 한발 더 나아가 미학적 적극성을 발굴해 내는데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닐까. 현대시조로 삶과 현실을 다루면서 시대의 아픔에 온몸으로 버텨 관찰 적 입장이 아닌 주체가 되어 보기도 했으나 시적 발언에 공감하기 어려운 넋두리가 되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극한의 시조 빙하에서 수천 겹 두꺼운 얼음덩이에 숨구멍을 뚫고 있는 중임을 솔직히 고백한다.
― <머리말>
■ 澐海 송귀영
△중앙일보 시조, 국제신문 시 당선. 《현대문학》 등림
△ᄒᆞᆫ맥문학가협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정화위원. 시조협회 부이사장. 시조문학 부회장. 현대시선문학사 고문. 한국서정문인협회장
△현대시선 금상, 시조문학작품집상, 시조문학상, 시조사랑문학상, 한국시조협회문학상, 대은시조문학상, 역동시조문학상, 월하시조문학상, 안정복문학상 외 수상
△시집 『나비의 잠』 『앓아눕는 갯벌』 『마음이 머무는 곳에』
△시조집 『뿌리의 근성 외 12집
△평설집 『한국대표 시문학 25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