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지만 덤처럼 생기는 삶의 환희는 선물과도 같이 누구에게라도 가끔 있지 않을까. 우리들은 조용하고 사소한 일에서 의미 있는 순간을 대개는 잊고 살게 되기도 하고 미처 느끼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불면증이 걸린 듯이 잠들지 않는 전천후 도시의 밤인 대학로에는 어떤 간판 앞에서 마지막 눈물을 글썽이는 순간 이 세상에 본인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수채 생각하기도 싫어할지 모를 수도 있겠다. 자식이 떠나고 함께 살던 남편이 떠난 다음 의사의 진단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일러 주면 요즈음에 가게 되는 고려장 같은 요양병원이나 양로원을 가는 마지막 날에 그 길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가려나. 세상에서 자식에게 마지막 임종을 보게 하지도 못하는 여건에 혼자서 삶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여기면서 쓸쓸한 체념으로 짧은 생존을 허락한다고 할 때 절대 고독은 울 수도 없이 나약하게 될지도 모른다. 옆에 서 있는 거대한 대학병원에는 지금도 생사의 이중주가 연주되듯 죽어 가고 태어나고 순환의 역사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시신을 기증하는 사람들로 꽤 많지만 장례식장에서 화장터로 가는 사람도 많다. 응급실을 비롯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환자들이 오고 간다. 누군가는 유한한 삶에서 몸부림치다가 결국은 이 길을 가지 않을까. 순서대로…
가을이 다가올 겨울을 향하여 우수에 물들어가면서 타던 빛깔로 지상으로 낙하하여 뒹군다. 나이를 한 살 더하는 새 해가 오면 친정아버지가 세상을 버리신 그 나이가 된다. 아울러 법정 스님이 가신 나이이기도 하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림의 세계에서 덤처럼 행운의 수상이 나를 고무시킨다. 그러구러 여의도는 내 삶에 활력을 준다. 이 가을을 살아내며 상념의 조각들을 모아 또 한 권의 수필집을 엮는다. 수필집이야 말로 유언장이며 유서가 아닐까. 언젠가는 나도 오지 못 할 길을 가겠지만 아직은 건강하게 사랑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데 웬 염려증을 앓고 있느냐고 힐책하는 이도 있겠지만 가을을 타는 감성은 나를 아주 많이 사유의 골짜기로 밀어 넣는다. 누군가 나와 함께 가을을 앓는 마음으로 이 글 가까이에 있어주면 좋겠다.
― <머리말>
● 초연 김은자
△동국대 행정대학원 졸업(석사)
△《에세이포레⟫수필, 《문예춘추》 시 등단
△문고목문학회 회장. 종로포엠문학회 회장. 문예춘추문인협회 부회장. 강남포에트리문학회 부회장. 종로구 장애인협회 고문. 육필문학회 운영위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전자문학상, 한국전자저술상, 《문예춘추》 수필문학상, 빅톨위고문학상 금상, 현대문학100주년기념문학상, 21세기 뉴코리아 문학상 최고상 수상
△수필집 『내 귀에 말 걸기』 『침묵의 아우성 대학로』 『가슴이 듣는 진혼곡』 외 다수
△시집 『불꽃은 영원하리』 『그리움의 비등점』 『딴 여인을 가슴에 품은 남편』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