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국어를 짊어지고 부려놓는 노-트북 워드 판은 마치 혼자 떨어지는 가을 낙엽이 정독 도서관 잔디 위에서 서걱거리며 떼를 지어 떠드는 것 같다. 물컹거리는 언어의 디딤돌을 딛고 마음의 근육을 모아 또 한권의 어설픈 시집을 엮는다. 가버린 젊은 날의 신발이 비스듬히 달아도 억지로 좀 신다가 버리기를 몇 번을 했던가. 침묵에서 꺼내오는 삶의 벽돌로 언어의 집을 짓고 초라한 삶을 빨래처럼 허공의 빨래 줄에 널어 말리는 심정이다.
내 신발창 밑에서 부서지는 묵은 시간들을 꺼낸다.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핀 보랏빛 들국화의 미소가 더 이상 쓸쓸하지도 않게 보이는 무뎌진 감성이 그림을 그린다고 어설프게 붓질을 한다. 그림 옆에 화제로 시어의 진액을 찍어 써내려간다. 영혼이 교감하는 화폭의 주제에 역시 그럴듯한 나만의 조합이 되는 보람을 기뻐한다. 때때로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외로움을 달래기에 글로 문장을 엮어서 차곡히 쌓는 즐거움과 함께 내 길을 간다. 삶의 갈피마다 계곡에서 쏟아지는 가뭄에 흐르는 물줄기 같은 사연들을 까치발 띄워 구름을 잡아 버무리면 바람의 온도가 고명을 얹어 한 작품으로 접시에 담긴다는 느낌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면 어김없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사실을 접어두고 이 가을에 사랑하는 감성을 꺼내어 세월에 베여서 사랑에 아파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새살이 돋아 두 마음 하나 되어 행복한 둥지도 꿈꾸는 희망을 짊어지고 가 보았다. 누군가의 곁에서 사랑의 길라잡이로 이 시집이 벗이 되기를 소망한다.
창작의 길에 힘을 주는 내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인생의 보람을 직조하는 한 올로 시집 이불이 되기를 바란다.
― <머리말>
● 초연 김은자
△동국대 행정대학원 졸업(석사)
△《에세이포레⟫수필, 《문예춘추》 시 등단
△문고목문학회 회장. 종로포엠문학회 회장. 문예춘추문인협회 부회장. 강남포에트리문학회 부회장. 종로구 장애인협회 고문. 육필문학회 운영위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전자문학상, 한국전자저술상, 《문예춘추》 수필문학상, 빅톨위고문학상 금상, 현대문학100주년기념문학상, 21세기 뉴코리아 문학상 최고상 수상
△수필집 『내 귀에 말 걸기』 『침묵의 아우성 대학로』 『가슴이 듣는 진혼곡』 외 다수
△시집 『불꽃은 영원하리』 『그리움의 비등점』 『딴 여인을 가슴에 품은 남편』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