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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는 강

나이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심신이 쇠약해지면서 태어나고 자란 수묵화水墨畵 같은 고향의 산야와 질펀한 들녘이 언뜻언뜻 떠올라 어린 시절이 가슴이 저미도록 그리워진다. 그 옛날 수원지 산이라고 불렀던 백양산 분지 밑에 삼면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50 여 호의 올망졸망한 초가집과 기와집이 아우러진 두메산골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나는 이 동네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고 청운의 꿈을 설계했던 고등학교 시절도 청년기도 줄곧 안태본安胎本에서 살았다. 중년을 지나 황혼기에 든 지금도 연지동과 접경한 초읍동에 살고 있다. 그 옛날 나의 고향 마을 앞에는 커다란 못이 있고 마을 옆 개천에 옥같이 맑은 계류가 흐르는 전형적인 아름다운 시골이었다. 나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이곳에서 태어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서쪽..
나이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심신이 쇠약해지면서 태어나고 자란 수묵화水墨畵 같은 고향의 산야와 질펀한 들녘이 언뜻언뜻 떠올라 어린 시절이 가슴이 저미도록 그리워진다. 그 옛날 수원지 산이라고 불렀던 백양산 분지 밑에 삼면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50 여 호의 올망졸망한 초가집과 기와집이 아우러진 두메산골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나는 이 동네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고 청운의 꿈을 설계했던 고등학교 시절도 청년기도 줄곧 안태본安胎本에서 살았다. 중년을 지나 황혼기에 든 지금도 연지동과 접경한 초읍동에 살고 있다.
그 옛날 나의 고향 마을 앞에는 커다란 못이 있고 마을 옆 개천에 옥같이 맑은 계류가 흐르는 전형적인 아름다운 시골이었다. 나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이곳에서 태어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서쪽 편 선산에 묻히셨다.
어린 시절 봄과 여름이면 들판에서 소먹이고 꼴 베고 멱 감고 고기를 잡았다. 여름이면 백양산 깊은 산 속에서 다래를, 가을이면 밤을 따먹고, 겨울이면 못에서 얼음지치며 사계절을 흙과 물에서 자랐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물장구치고 다람쥐 잡던 향수적 마을이었다.
수없이 반추되는 세월의 흐름과 도시의 발달로 정겨운 들녘도 초가집도 기와집도 오래 전에 사라지고 삭막한 시멘트 건물들로 변했다.
나와 비슷한 세대에 태어난 세대들은 어쩌면 행운아인지 모른다. 원시적인 관솔불 시대에서 호롱불 시대까지 그리고 전깃불 시대에서 공상 과학 만화에서만 보았던 달 착륙을 현실로 본 최첨단 전자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불과 오륙 십 년 사이에 엄청나게 변천한 격세지감에 감회가 새롭다.
아! 그 옛날. 옹기종기 모인 시골의 낮은 담 대문 없이 오가며 풍성한 인정을 나누던 이웃과 이른 새벽이면 참새 떼가 들판으로 날아가 종일을 모이를 쪼아 먹고는 어스름이 밀려드는 이내가 낀 고요한 황혼이면 수백 마리의 참새 떼들이 마을을 덮으며 대숲으로 돌아오는 장관과 저녁밥을 짓느라고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정경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아버지는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 누구 집은 저녁을 굶는구나 하시며 혀를 끌끌 차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슴하게 떠오른다. 그 때는 양식이 떨어지면 이웃집에서 곡식 한 되 박 꾸어 밥을 짓던 정겨운 그 시절이 아쉽도록 그립다.
― 책머리글 <작가의 말>
●  김상원 소설가
△부산에서 출생히였으며
△《한국소설》로 등단히였다.
△장편소설로 『세월이 흐르는 강』이 있으며
△소설집으로 『무지개』이 있고
△대하소설로 『야초』(전5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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