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백지 허허롭지만 내 마음 박혀 있는 때가 있다. 미리 밑그림 심어져 있다. 펜을 들고 백지에 갖다 대면 무심코 돌기 튀어나오듯 비 온 뒤 샘 솟구치듯
글자들 무리 지어 앞뒤 없이 줄을 잇는다.
높이도 깊이도 없어 입체미라곤 없지만 응축된 눈물 방울지다 고일 데 없어 바람결에 말라버리지 않았는가. 느닷없이 얄궂은 체취를 뿜어내어 놓고서
마냥 좋은 향기인 양 해서야 쓰겠는가. 좋은 향기도 대놓고 맡다 보면 게우기 마련인데, 하물며 싸구려 향에 잘 생긴 코 벌름거리게 해서야……
냄새 풍기기 전에 미리 이실직고해야 편할 것 같다. 마실 공기마저 어지럽혀진 판에 은근슬쩍 구역질감 하나 보태니 어쨌든 양해든 용서든 미리 청해야 될 일 아닌가 싶다.
― 머리말(시인의 말) <한 장의 백지에>
■ 고창표(高昌杓)
△아호 : 만심(滿沁), 고촌(杲村), 아름드리
△부경대학교 국제대학원 문학치료학(석사)
△등단(2006년)/신인상: 《자유문예》 시·수필, 《창작과의식》 시·수필, 《부산가톨릭문학》 수필, 《문예춘추》 시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부산문인협회, 부산가톨릭문인협회, 수영구문인협회 회원
△평생교육사(교육과학기술부장관). 한자(1급)지도사(한국어문교육원장). 독서논술지도사. 방과후지도사.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우리말다듬기 회원
△모범공무원상 수상. 녹조근정훈장 수훈
△시집 『볕드는 이런 날에는』 『산모롱이 돌아가며』 『철 지난 나팔꽃 향연』 『여운의 궤적』 공동시집 『꾼과 쟁이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