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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스승

내가 뿌린 씨앗은 아직 움트지 않았는데 누가 반가워한다고 잡초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뾰족이 솟아오른다. 이게 내가 기다리고 있는 작물의 싹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밭고랑에 앉아서 “잡초야 너무 하지 않니, 조금 기다렸다 나오지 그래, 초보 농사꾼을 이렇게도 황당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너로 보면 네 자신에게 충실한 건 맞지만 말이야. 그래 좋다. 나도 너처럼 때를 놓치지 않으면서 살아 보련다.” 하며 넋두리를 늘어놓곤 한다. 이런 넋두리를 쓴 글인 ‘잡초인생2004. 2.재판 나무아래사람’을 일부 수정해서 ‘잡초스승’이란 이름으로 엮어내 본다. 힘들 때마다 잡초는 유연함을 가르쳐주었고 태풍이 몰아칠 때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일어서는 위기대처능력도 가르쳐주었다. 잡초는 마실 물이 ..
내가 뿌린 씨앗은 아직 움트지 않았는데 누가 반가워한다고 잡초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뾰족이 솟아오른다. 이게 내가 기다리고 있는 작물의 싹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밭고랑에 앉아서
“잡초야 너무 하지 않니, 조금 기다렸다 나오지 그래, 초보 농사꾼을 이렇게도 황당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너로 보면 네 자신에게 충실한 건 맞지만 말이야. 그래 좋다. 나도 너처럼 때를 놓치지 않으면서 살아 보련다.”
하며 넋두리를 늘어놓곤 한다. 이런 넋두리를 쓴 글인 ‘잡초인생2004. 2.재판 나무아래사람’을 일부 수정해서 ‘잡초스승’이란 이름으로 엮어내 본다.
힘들 때마다 잡초는 유연함을 가르쳐주었고 태풍이 몰아칠 때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일어서는 위기대처능력도 가르쳐주었다. 잡초는 마실 물이 부족하면 대궁이 땅에 닿을 정도로 수그리고 있다가 밤이슬이 내리면 이를 디딤돌로 해서 일어서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자기 땅에서 살고 있는 들풀을 인간이 임의로 그은 선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잡초라 부르며 업신여기고 있지만 잡초는 말한다.
“인간은 우리 들풀에게는 몹쓸 침략자라고. 인간의 행동거지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도 살기 위해서 계속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라고.
잡초는 자신에게 씌워진 ‘잡초’라는 멍에를 벗고 들풀이 되고파 밭고랑에서 쉼 없이 게릴라 전투를 벌이고 있다.
― 김창수, 책머리글 <이야기 문을 열면서>
■ 김창수 작가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공방 <문학과 사진> 대표
△문학세계문학상, 허균문학상 외 다수 수상. 황조근정훈장 수훈
△저서 『곰삭은 풍경소리』 외 28권
△전시회 ‘산’(2002), ‘호반의 정취’(2003) 외 그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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