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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징골

쇠징골은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고향 마을인 새마실 북쪽에 있는 가장 길고 넓었던 골짜기 이름이다. 그 곳은 고향 마을 뒤쪽으로 길게 누워 있는 대동맥처럼 이산 저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모두 담아서 마을을 끼고 경주 서천까지 흘러서 형상 강이 되고, 동해 바다가 되고, 태평양이 되어 지구의 반도 더 되는 큰 바다를 만든다. (중략) 명장리로 올라 가다가 좌측에 감나무 골, 심박 골 등이 있다. 그런데 막작 골(莫寂 谷)입구에 있는 처매 갓과 늘 밤 메기, 외 골 일대를 모두 경상북도에서 지방세수 증대를 위한 기획사업의 산물로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온통 구릉지대가 다 매립되고, 깎여지고 하다 보니 아담했던 골짜기들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내 유년 시절 그 모래알처럼 많았던 추억을..
쇠징골은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고향 마을인 새마실 북쪽에 있는 가장 길고 넓었던 골짜기 이름이다.
그 곳은 고향 마을 뒤쪽으로 길게 누워 있는 대동맥처럼 이산 저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모두 담아서 마을을 끼고 경주 서천까지 흘러서 형상 강이 되고, 동해 바다가 되고, 태평양이 되어 지구의 반도 더 되는 큰 바다를 만든다. (중략)
명장리로 올라 가다가 좌측에 감나무 골, 심박 골 등이 있다. 그런데 막작 골(莫寂 谷)입구에 있는 처매 갓과 늘 밤 메기, 외 골 일대를 모두 경상북도에서 지방세수 증대를 위한 기획사업의 산물로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온통 구릉지대가 다 매립되고, 깎여지고 하다 보니 아담했던 골짜기들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내 유년 시절 그 모래알처럼 많았던 추억을 주저리주저리 담고 있던 작은 골짜기들과 그 사이로 흐르던 냇물이 다 사라져 버렸다. 또한 우리 탑 골 최 씨 12대조 할아버지께서 임진왜란 당시 어린나이에 왜구의 토색질을 피해 웅 천 댁이라는 유모(乳母)의 등에 업혀 현곡에서 구미산을 넘어 피난을 와서 자라나고 장가를 가서 일가를 이루었는데 아직도 남아 있는 3층 석탑 하나가 마을 앞 밭 가운데 남아 있어서, 마을 이름도 탑 골이 되었다.
그래서 경주 최씨 사성공파, 참판공파의 우리 일가 탑 골 최가(繼자明자)라고 불리고 있다. 여름철 해 걸음에 소를 올려놓고(골짜기 안으로 하루 동안의 소의 방목을 소 먹이러 간다고 표현했음), 개구리와 뱀을 잡으면서 놀고, 작은 냇물에 발 담그고 놀던 추억의 고삐들도 모두 숨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 별처럼 아름답던 내 유년의 추억들이 행여 나의 기억 속에서 조차 사그라지기 전에 긁어모아 담아두고 싶어서 만든 것이 바로 <쇠징골>이라는 이 추억 바구니이다.
― <머리말> 중에서
● 최해필
△경북 경주 출생
△육군3사관학교(4기) 임관. 美 국방어학원, 美 공군 기술학교 A.T.C.과정 졸업. 육군항공병과장, 항공작전사령관 역임. 육군소장 예편
△공주대 경영대학원(석사). 건양대 행정대학원(박사)
△≪문학세계≫ 시·수필 등단
△세계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수필) 회원
△한서대 헬기학과 교수 역임
△보국훈장 천수장 수훈
△저서 『장군이 되기까지』 『귀원』 『구름 돛을 높이 달고』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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