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금당계곡의 신화’를 통하여 소설로 얼굴을 내민 후 틈틈이 소설을 써 왔습니다.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시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삶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이지요. 시와 소설은 사물이나 현상, 사건을 바라보는 각도와 관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소설은 시와는 달리 일시적인, 즉흥적인 감정이나 서정만으로는 쓸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기에 객관적인 시각과 많은 자료 조사, 수많은 퇴고작업 등 많은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로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작으나 따뜻한 이야기 혹은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거대담론은 아니지만 소시민적 애환과 휴머니즘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 띄엄띄엄 9편의 단편을 발표하였는데 이후로는 소설에서는 떠나 시만 써 왔습니다. 그간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어떻게든 이 또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그 동안 발표한 작품을 책으로 엮고자 다시 타이핑을 하면서 ‘무너진 두 하늘’이란 작품을 추가로 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든 소설이든 어디까지나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저는 그 작품에는 나름의 감동이나 감흥,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자칫 말장난이나 사변적 흐름에 빠지는 것을 저는 늘 경계해 왔습니다.
쓰여진 순서대로 편집한 이 10편의 단편이 독자에게 얼마나 감흥 내지는 감동, 깨달음을 줄지 알 수 없지만 우리 모두 이 어렵고 험한 세상 삶을 살아가면서 다소간의 위로와 카타르시스 내지는 교훈에 이르기까지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무협소설이나 환타지소설처럼 시원시원하게 전개해 나가는 과정은 없으나 약간 답답한 느낌이 들지라도 한 자 한 자 곱씹어 보면서 천천히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글이 읽히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 책의 글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인지상정이겠지요.
오늘은 태풍 ‘찬홈’으로 인해 모처럼 단비가 대지를 적시는군요.
제가 쓰는 모든 글들이 그런 단비가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 노유섭, 작가의 말(책머리글) <단비가 되기를>
● 노유섭
△아호(雅號) 향산(向山)
△광주(光州) 출생
△광주일고, 서울대 국어과·경영학과, 동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우리문학》(1990)으로 시, 《한글문학》(1997)으로 소설 등단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한국문인협회관악지부회장 역임
△국제펜한국본부 이사·기획위원. 한국예술가곡연합회 부회장. 기독교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전남YLA 교수
△우리문학상, 한국현대시인상 수상
△시집 『풀잎은 살아서』, 『희망의 실타래를 풀고』, 『유리바다에 내리는 눈나라』, 『아름다운 비명을 위한 칸타타』, 『눈꽃으로 내리는 소리』, 『햇빛 피리소리에 어깨 겯고』, 『봄빛 마을에 살리라』
△소설집 『원숭이의 슬픔』
△수필 다수. (작시)가곡·찬송가 140여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