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다가 뽕나무에 촘촘히 달린 오디를 발견했다. 잘 익은 검은 오디를 따먹는 재미에 취해 처음 벌에 쏘였다. 부어오른 팔뚝을 보며 행복한 엄살을 했다.
파란 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 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원주에 있는 토지 문화관에서 지냈다. 산책을 하며 많은 풀꽃과 곤충들, 새소리에 친숙해졌고 연체동물을 싫어하던 내가 아기 뱀하고도 눈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날그날 사연과 삶에 대해 지껄이고 싶은 이야기들을 싫다 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줄 ‘베개 같은 사람’이 그리워 나는 치장해서 독자에게 풀어놓는다.
삶에 대한 절실한 책을 읽고 싶었는데 수많은 책들을 들춰본 결과 결국 마지막에 이른 것은 불교 경전이었다. 진실로 감회하고 공감하였다. 나는 거기에서 문득, 서구의 물질문명을 이겨낼 수 있는 우리만의 것은 무얼까? 생각하게 됐고 거창하게도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우리만의 정신적 유품은 ‘불교’라는 답을 얻었다.
그때부터 불교소재의 글을 쓰려다 보니 길을 가다가 흙 묻은 종이조각에 스님의 ‘스’자만 보아도 주워서 읽고 버렸다. 그러나 결코 특정 종교를 내세우고 싶어 하는 소설은 아니다.
삶이란 고뇌이다. 작품 속에 여러 등장인물의 삶을 거울에 비추어 보고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보자는 것이 이 작품의 작의이다. 만들다 보니 늪처럼 너무 어두운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 혼자서 걷던 외딴길에서 돌아보는 심정이다.
늘 지나고 보면 후회되는 짓을 곧잘 하는 게 내 특성인데 오십 프로도 만족할 수 없는 작품을 내 놓으며 개미집이라도 들어가고 싶게 되는 건 아닌지….
그런데 나는 작품이 안 될 때의 고뇌와 신들린 듯 써내려 가는 작가의 그 ‘광기’를 너무 사랑한다. 쓸 때만이 가장 행복해하는 그들과의 공통분모를 갖고 있음에서다.
못난 아내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남편과 엄마 없는 여러 달 동안 불편함을 참아 준 아들과 딸에게 고맙다는 말 지면을 통해 전한다.
문우 주연숙씨와 마선숙씨 신군자 시인의 격려로 인하여 행복할 수 있었고 책 안 팔리는 이 어려운 시대에 애정을 갖고 전자책으로 발행해 주신 한국문학방송사에도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 윤정옥, 작가의 말 <'베개 같은 사람' 그리워> 중에서
■ 윤정옥 소설가
△서울 출생
△한국방송대, 중앙대 예술대학원 수료
△《오늘의문학》 소설 등단(1994)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강서문학상, 대한민국횃불문학상, 인터넷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그 여자의 전설』, 『수미산 옷을 벗다』
△소설집 『또 하나의 고백』
△수필집 『다시 사랑할 때까지』
△동화집 『왕따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