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반에 담긴 행운목 같은 것이 인생이더라, 아니 슬픔을 어루만져야 꽃이 되더라, 라고 다시 마음의 문장을 고칩니다. 바람이 물어다 놓은 길에 휑하니 뚫린 슬픔의 통로가 지중해까지 이어진 것이 인생이라고, 그 길 위에서 꽃이 되고자 바람과 구름을 반죽합니다.
왜 그토록 바람風이란 단어에, 그 보이지 않는 몸집에, 오랜 세월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까 또 생각해 봅니다. 바람이 꽃을 피우고 바람이 공기를 순환시키는, 그 매력만은 아닐 것입니다.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하루, 진로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삶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지요.
오늘도 수반에 놓인 행운목과 교우합니다. 15cm 정도만 남고 아래위가 잘린 단단한 나무토막에서 새순이 밀고 올라와 나래를 폅니다.
그 나무에서 푸른 구름이 둥실 떠오릅니다. 잘려 버려진 것들이 싹을 틔우고 생명이 되는 이 눈부신 시간 앞에서 가끔은 할 말을 잃어 버립니다.
투명한 유리그릇 속에서 부동자세로 앉아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행운목,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나무의 삶이 이토록 절절한 것도 제가 바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되겠지요. 경계가 없이, 경계를 허무는 바람처럼 제 상처를 다스린 것들이 詩가 되기를 바랍니다.
잎 하나가 나무 전부가 아니듯, 바람 또한 숲속에서만 울부짖는 것은 아닙니다.
창문을 닫아도 바람은 불고 마음을 닫아도 사랑은 내 안에 먼저 와 있습니다. 다만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세상 일부를 발효시킨다는 소로우의 말처럼, 독자의 가슴에 한 문장이라도 기억되길 바랄 뿐입니다. 속울음을 다 받아들인 나무의 뿌리처럼, 햇빛을 다 받아들인 푸른 잎처럼, 탄력 있는 시간과 허물어져 곪은 시간을 엮은 ‘부끄러움’ 하나 더 세상 밖으로 내놓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이런 사람을 늘 격려해 주고 다독여 주며, 함께 하는 가족과 지인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 조윤주, 책머리글 <시인의 말>
● 조윤주 시인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예술세계》 등단(1998)
△한국문인협회, 현대시학 회원
△오늘신문 객원기자. 조윤주시인의꽃갤러리 대표
△시집 『미완성의 노래가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꽃똥』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