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딱 벗고, 네 활개 활짝 펴고, 따신 햇볕 안고서 넋을 놓았으면 좋겠다." 홀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는 가끔 이런 애티가 꼬드긴다. 시장의 건축허가도 없이 멋대로 울퉁불퉁 튀어 나온 몸통을 살피면, 눈이 절로 외로 돌아 갈 텐데도. 잠자리에 들 때마다 물맞이 다음, 지킴이의 눈길을 피해 날쌔게 잠옷만 걸친다. 하루 16시간 옥살이한 살갗이 제 세상을 만난 듯하다. 시원하고 가뿐해서 궁노루가 된 기분이다. 열대지방의 튼실한 구리 빛 원주민들도 이런 맛에 홀딱 벗고 사는가 보다.
난 참 바보 같은 삶을 용케도 꾸려 왔다. 그 발자취를 낯간지러운 줄도 모르고 홀딱 벗어 버렸다.
하지만 도둑심보는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책이름을 <악수 도둑>으로 내세운다. 사랑 도둑, 까막눈 도둑, 게으름 도둑······, 뭇 도둑 앞잡이로.
제1부에서는 0에서부터 9까지의 숫자를 갖고 콩팔칠팔했다. 글감이 없어 글을 못 쓴다는 핑계를 입막음하자는 다짐으로.
제2부에선 개꿈과 허튼소리를 펼쳐 봤다. 노망 끼라고? 아니, 난 아직 멀쩡하다. (내 생각일 뿐)
제3부와 제5부에서는 여러 산들의 품안에 안기면서 보고 느낀 바를 적었다. 산 정보를 알뜰히 알아보는 체 하면서.
제4부에서는 바보의 삶을 홀딱 벗겼다. 낯 두껍게도.
가급적 짧고, 힘이 있고, 재미있는 글을 만들기 위해 굳은 머리를 요리조리 굴려 봤다. 역시 텅텅 빈 머리라는 걸 확인했다.
원체 배움이 얕고, 글재주가 바닥인지라 맘먹은 데로 되지 않아 안타깝다.
‘바보의 삶 머슴의 꿈’, ‘산정에 머문 바람’, ‘얼씨구절씨구’에 이어 네 번째로 팔삭둥이를 낳았다.
“늙을 만치 늙었는데, 언제나 철이 들려나?”
독자님,
홀딱 벗은 모습이 눈에 거슬리더라도 부디 빙그레 웃으며 넘기소서.
― 황장진, 책머리글 <홀딱 벗고> 중에서
■ 황장진 수필가
△《문학세계》 수필 신인상(1991)
△강원수필문학회∙청계문학회 고문. 수필문학가협회∙강원문인협회∙강원펜클럽 이사
△수필집 『가나다 타파하』 『청년들이여, 고개를 들라』 『참 바보』 『거너더 터퍼허』 등 11권
△전자 수필집 『나, 전봇대는 바로 서고 싶다』 『청년들이여, 고개를 들라』 등 10권
△전자 시집 『자랑스런 한국인』 『즐겁게 살자』
△건강생활지침 『항상 장대하라』 『항상 빼어나라』 『한우리 연구』 등 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