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4월, 나는 필리핀으로 여행을 갔었다. 거기서 가이드 미스 진을 만났는데, 그녀는 자청해서 노래를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려진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다가 미안함을 금치 못하면서 자기의 사연을 털어냈다.
저는 6.25전쟁의 피해자입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어머닌 필리핀 남자와 재혼을 했고, 어머니를 따라 저는 필리핀으로 왔어요. 그러나 그 사람은 저를 자식으로 받아주지 않았으므로 영원한 외국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외국인은 일 년에 한 번씩 다른 나라로 나갔다와야 되는 고달픈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끝에 박정희대통령시절이 되면서 한국과 필리핀은 국교가 수립되었고 저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유일한 여자로 이멜다의 한국어통역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필리핀남자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저는 절대로 국적은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영원한 한국인일 것이며, 언젠가는 꼭 고향으로 돌아가려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은 뭉클하니 피가 요동을 치면서 콧등까지 찡하게 전달되어 왔다. 그 어린 나이에 이국땅을 떠돌면서 얼마나 고국이 그리웠으면 저런 결심까지 한 것일까?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인 6.25의 피해자는 여기에도 있었구나.
나는 오늘 눈을 감고 곰곰 생각에 잠긴다. 파괴의 진실은 무엇일까? 여의도 KBS방송국 광장에 무수히 널려있던 그 많은 팻말들에 새겨진 사연들과 아울러 미스 진의 아픔은 곧 나의 앙금으로 가슴 속에 남아있다. 왜냐하면 내 가슴 속에도 미스 진과 같은 응어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풀고 넘어가야 될 것이기에 이 글을 적어본다.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무슨 의미일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면서 어느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 문제도 아닐 것이다. 더 나은 이상향을 향해 달려가려다 발을 헛디뎌 웅덩이에 빠진 격이다. 그러나 처녀가 처녀인 채로 남아있으면 영원히 처녀일 수밖에 없지만, 침입자로 인해 처녀성이 파괴된 뒤 상실과 허무라는 고통이 따르긴 해도 그런 진통을 겪고 난 뒤에는 꼭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원리처럼 우린 생각을 바꾸어서 어떤 방책을 써서라도 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와야 된다.
이로 보건대 파괴란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닐 듯싶다. 어쩌면 한 단계를 오르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
비록 동족상잔이란 아픔 때문에 많은 후유증이 남긴 했어도 그것은 오직 밑거름으로, 딛고 일어서서 비약해야 하는 과제로 생각하면서 모든 응어리들은 날려 버리련다.
― 김순녀, <머리말>
● 김순녀 소설가
△한국예술총연합회 예술평론 신인상 소설 당선(1989)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경원대 대학원 국문학 석사. 백석대 기독교전문대학원 국문학박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한국여
성문학인회 이사. 문학치유연구소 소장
△한국전자저술상 수상
△장편소설 『거꾸로 도는 물레방아』 『먹이사슬』 『너에게로 가는 길』 『예레미야』『에스겔』
△소설집 『아담의 잉태』
△논문집 『구인환 초기 단편소설 연구』 『‘욥기’
에 나타난 심리적 갈등과 문학적 표현방식』
△이론서 『문학치유원론』 『문학치유방법론』
△스토리텔링집 『이집트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