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소를 친 적이 있습니다.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에 굵직한 두 개의 뿔이 머리꼭지에 우뚝 돋은 소였습니다.
몸통이 온통 누렇게 생긴 뚜벅이란 이름으로 불렸던 황소로 기억합니다.
뚜벅이는 우리 집의 온갖 궂은 일 힘든 일을 다 도맡아하는 일꾼이었습니다.
철따라 밭갈이 논갈이, 심지어는 달구지를 끌고 산에서 땔감을 해 나르는 일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던 뚜벅이었습니다.
그 뚜벅이의 눈망울 속에는 언제나 푸르른 하늘이 담겨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의 고향 산천도 고여 있었습니다.
허리 굽고 주름진 우리 아버지의 얼굴도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도 뚜벅이가 뚜벅뚜벅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목둘레에 매달린 워낭에서 잘랑잘랑 맑고 고운 소리가 흘러나오던 기억이 손에 잡힐 듯 귓가에 선합니다.
언제부턴가 뚜벅이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고향 들녘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뚜벅이들만 자취를 감춘 게 아닙니다. 당신의 몸보다도 더 뚜벅이를 아끼고 사랑했던 우리의 아버지들도 하나 둘 고향을 떠나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고향, 뚜벅이가 없는 고향은 이제 아무것도 볼거리가 없는 쓸쓸한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웬만큼 산다고 하는 집이면 외양간에 덩치 큰 뚜벅이가 들어앉아 왕방울 눈을 끔벅이며 여울을 삭이던 우리의 고향.
그 많은 우리의 뚜벅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뚜벅이들이 어슬렁거리며 꼴을 뜯던 아늑하고 평화스러운 고향이 그립습니다.
쩌렁쩌렁 들녘을 울리며 뚜벅이를 몰던 우리 아버지들의 걸걸한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우리의 고향이 마냥 안타깝습니다.
― 머리말 <고향을 떠난 뚜벅이들>
■ 김여울
△아동문학평론 동화, 전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문예연구》 수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아동문예》 동시 당선
△한국문인협회, 장수문인협회 회원
△전북아동문학상, 장수군민의장 문화장, 현대아동문학상, 전북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공무원문예대전(동시) 우수상 수상
△장편동화 『뚱메골 민들레』 『햇살 언덕의 작은 나무들』
△동화집 『곱사춤과 방아타령』 『선생님과 제과점주인』 외 다수
△소설집 『벽지의 하늘』
△수필집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봄, 그리고 고향』
△동시집 『텃밭에서』
△편저 『창선감의록』(고전) 외 7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