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유학하고 귀국해서 처음으로 살림을 차린 곳이 서교동 홍익 대학교 앞이었다. 아파트를 재개발한다고 해서 셋방은 가기 싫고 집을 산다고 5년을 기다렸는데 풍수지리학적으로 길지에 잉혈(孕穴)이라는 명당을 만났다. 금요일 보고 토요일 계약을 했다. 그리고 여기서 늙어가고 있다.
서교동 재개발이 곧 되는지 알았는데 10년이 넘어서 완성되고 그 아파트는 막내아들에게 주었다. 혜화동 우리 집이 고목 나무에 꽃이 핀다는 명당이라고 하더니 그 말대로 나는 황혼이 되어도 건재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풍수지리를 강의하던 유명한 김종철 선생님이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당신이 혜화동에 이사 오고 싶었어도 연이 없어서 못 간다는 말씀을 하신 점을 늘 상기시킨다. 하긴 두산그룹의 박 회장이 살던 집이라고 하는 소문은 들었는데 자기 아들 살게 하려고 집을 단단히 잘 지었다는 소리는 들었다. 사람의 마음이 좋다고 하면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삼십 년을 살았으니 얼마나 많이 변했겠나. 커다란 변화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버렸다는 사실이다. 삼 남매는 모두 결혼해서 나름대로 자녀를 두고 잘살고 있다. (중략)
이승만 박사의 이화장이 있는 옆에 종로복지관이 있어서 그곳에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했는데 코로나 19의 위험으로 문을 닫은 지 꽤 오래되었다. 동대문 시장 경동시장 남대문 시장이 가깝고 서울역 시청 앞 중앙청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도 가깝게 있어서 참 좋은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이 이 명당에서 살았기 때문에 쓰러지고도 오래살지 않았나 생각 할 때도 있다. 나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는 와룡산이 안산으로 우리 거실에서 만져질 듯 앉아 있다. 문을 열어 놓으면 창경궁의 피톤치드가 바람을 싣고 거실에 다녀가면 냄새가 잘 빠지고 오늘 같이 장마가 지는 시기는 물이 들 염려가 전혀 없다.
혜화동에 달이 뜨면 그리운 사람들이 보고 싶어지고 별이 보이면 어린 날의 추억이 고향으로 나를 데려간다. 이제 여기서 내 생을 마칠 생각을 하면서 좋은 공기와 조용한 이웃과 정원의 수목이 전부 나의 벗이고 자산이다. 딸 정두가 나와 합가하여 편안하게 살고 있어서 노후의 안락함을 견지하고 있다. 내 다리가 아프면 여기서 살기가 힘든 것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그것이 문제다. 은혜로움으로 변하는 혜화동은 이름이 그냥 따뜻하게 느껴진다.
― <머리말> 중에서
● 초연 김은자
△동국대 행정대학원 졸업(석사)
△《에세이포레⟫수필, 《문예춘추》 시 등단
△문고목문학회 회장. 종로포엠문학회 회장. 문예춘추문인협회 부회장. 강남포에트리문학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역옹인문학당 부학장
△한국전자문학상, 문예춘추수필문학상, 빅톨위고문학상 금상, 현대문학100주년기념문학상, 21세기뉴코리아문학상 최고상, 한국전자저술상, 역옹인문학상, 박경리추모문학상, 석좌시인금관장장,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 세계서법문화대전 동상, 금파미술대전 특선, 앙데팡당아트프라이즈전시회 동상 수상.
△시집 『불꽃은 영원하리』 등 16권
△수필집 『내 귀에 말 걸기』 등 20권
△소설 『어진 땅의 소리 결』 등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