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쯤 모하비 사막, 25년 만에 내린 빗물 고인 데서 이틀 후 민물새우 몇 천 마리가 뛰어올랐다. 그리고 13년 전 함안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성산산성 발굴 때 발견된 700년 된 고려시대 연(蓮) 씨앗을 심어 분홍연꽃으로 피워낸 사진(2010년 7월 8일 조선일보)을 보았다. 오랜 세월 어둠과 차가움 속에서도 생명력을 지녀온 강인함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지난 세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맞은 등단 50년. 사막의 새우 알이나 700년 된 연 열매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심혼에 깊이 와 닿을 글을 써 왔는지 부끄럽게 돌아보게 된다.
등단한 70, 80년대는 급성장하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져가는 고유의 전통이 아쉬워서 주로 한국의 미의식을 담은 글을 쓰려 했다. 90년대부터는 소재의 확충으로 내적인 준비도 부족한 채 테마에세이를 시도하면서 변모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경험과 정보와 재능이 함께 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빛나는 글을 쓰지도 못했으면서 50년 동안 글 쓸 기회를 준 수필문단에 감사하며, 좋은 글로 규범을 보이고 이끌어주신 선배님들이 많이 돌아가셔서 안타깝다. 철학과 사색, 풍부한 언어로 새 물길을 이뤄주시는 후배들에게서 받는 자극도 고맙다.
한두 편을 제외하곤 2년 반 동안 쓴 글들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주눅 들어 지낸 시기여서 소재 범위가 좁은 감이 있다. 편의상 1,2부는 일반적인 수필, 3부의 글에선 존경하는 역사적인 인물과 예술가, 배우고 만났던 스승과 문단 선배에 대해 회고해 보았다. 4부는 거의 젊은 시절 한때 좋아했던 19, 20세기의 명화에 대한 에세이들이다. 그 명화들은 25년 만에도 단비에 알에서 태어난 새우와 700년 된 열매에서 피어난 연꽃의 빛깔처럼 생명력 있고 아름다웠다. 5부는 창작과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를 담은 글이 많다.
걷고 뛰어도 아직도 날개가 돋지 않아 나비가 못되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비가 된 애벌레가 꽃들에게 희망을 주듯이, 문학의 힘은 사막 속에서나 땅속에서 700년이나 지내며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작품은 읽는 이들에게도 생명이 영원히 이어지리라.
어떻게 하면 돋보이는 책이 될 수 있을까 고심해준 선우미디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머리말>
■ 유혜자
△충남 논산시 강경읍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 ⁃ 동 대학원 졸업
△《수필문학》 등단(1972)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역임. 격월간 《그린에세이》 편집인
△MBC라디오 부국장 대우 PD로 정년퇴임. 방송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현대수필문학상, 한국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 방송문화진흥대상(라디오부문),한국방송대상(라디오프로듀서상), 한국펜문학상, 동국문학상, 조경희수필문학상, 올해의 수필인상, 흑구문학상, 조연현문학상, 《시선》2018올해의 최고작품상(수필부문), 윤재천문학상, 청하문학상, 원종린수필문학상, 김태길문학상 수상
△수필집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거울 속의 손님』 『세월의 옆모습』 등 12권
△음악에세이집 『음악의 숲에서』 『차 한 잔의 음악 읽기』 『음악의 정원』 등 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