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호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제주섬에 유배되었던 조정철과 그를 곁에서 시중들었던 홍랑과의 사랑을 소재로 했고, 특히 그녀의 지극한 마음을 그렸습니다. 홍랑이 그처럼 살신성애(殺身成愛)한 결단은 당시 어떤 애정관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장일홍 : 홍랑은 위기에 처한 조정철을 살리는 길은 오로지 자신의 죽음뿐이라고 결심하고 혀를 깨물어 자진하고 맙니다. 사랑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이 위대한 사랑의 힘, 용기와 신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저는 그걸 아가페(agape)라고 부릅니다. 결국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현대인들에게선 찾기 어려운 아가페를 조선시대의 한 여인에게서 발견하는 이야깁니다. 이 작품을 '한국희곡'지에 발표하니까 “그럼 복상사 하라는 말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죠. 그런 형이하학적인 사랑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사랑이라고 대답해 줬어요.
서연호 : 두 연인의 사랑을 심도 있게 그리기 위해서 조정철에 관한 스토리텔링은 억제되고, 극의 구조는 두 사람의 애정에 집중돼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애정극에는 분명 장점이 있지만, 아울러 사회성을 부각시킬 수 없는 단점이 있기도 합니다. 서울에 부인이 있었던 조정철이 그녀에게 그렇게 깊이 경도하게 된, 당시 심리적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장일홍 : 두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절해고도에 유배된 고립된 상황이 홍랑을 갈구하게 했고, 또 하나는 홍랑의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홍랑은 조정철과의 성행위에서 ‘자기 몸을 완전히 불태워 상대를 만족시키려는 듯이 온몸을 비틀고 소리를 질러대어 바깥으로 교성이 새어나갈까 봐 조정철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헌신적이었죠. 다시 말하여 홍랑은 완전한 사랑, 혹은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있어야 할 아가페와 에로스, 둘 다 갖춘 비련의 여인이었습니다.
서연호 : 조정철과 김시구의 사회적 갈등은 19세기 초엽의 지식인의 삶을 부각시키는 데, 표상적인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소재를 통해 새로운 역사극을 시도할 의향은 없습니까?
장일홍 :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19세기 초엽 조선조 지식인의 삶은 오늘의 시각으로 충분히 형상화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새로운 역사극은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 바탕 위에서 쓰여질 수 있지요. 제가 역사극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극’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의 극’이 될 것입니다.
― <인터뷰>(책 본문)
●장일홍
△1950년 제주시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중퇴
△《현대문학》 추천완료(1985).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1990)
△한국희곡문학상, 전통연희 창작희곡 공모 최우수상, 월간문학 동리상 수상
△희곡집 『붉은 섬』 『이어도로 간 비바리』 『내 생에 단 한 번의 사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장막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장편소설 『산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