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하나, 풀잎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도 가던 길을 멈추고 세상 구경을 하고 있다. 마치 동작 그만!, 이라는 지휘관의 명령이라도 떨어진 것 같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평화가 늘어졌다. 그동안 풀이 죽어 있던 일기예보가 목에 부쩍 힘이 들어가 있는 날이다.
나뭇잎 하나, 풀잎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구름도 가던 길을 멈추었다? 마치 소금 기둥이 된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 속에 있는 것 같다.
만약 그런 풍경이 계속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어느 날부터 우리는 황당한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갈증을 견디다 못한 나뭇잎들은 마른 낙엽이 되어 게딱지처럼 나뭇가지에 붙어 있을 것이다. 목이 마르다 못한 풀잎들은 기운 떨어진 수초처럼 땅바닥에 누워 버릴 것이다.
나뭇잎과 풀잎 이야기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집 영심이도 그렇다. 영심이는 필자와 이십육 년째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강아지다.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일백쉰여섯 살이다. 나이를 말하면 듣는 사람들마다 하마 입이 된다. 요즘 그 영심이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다. 등 쪽에 부스럼이 생기고, 잘 걷지 못하고, 백내장이 생기고 그래서 병원 출입이 잦았는데 이젠 아예 걷지를 못한다. 걷고 싶어서 애를 쓰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나뭇잎과 풀잎과 강아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필자는 매일 오전 시간에 유산소운동으로 공원을 걷는다. 내 모습이 공원길에 보이지 않는 날은 비 오는 날 뿐이다. 장맛비가 계속 내릴 때도 어쩔 수 없이 운동화 끈을 매지 않는데, 한 열흘쯤 내리 걷기를 거르다가 다시 시작할 때면 호흡과 속도가 전과 같지 않은 것을 느낀다. 물론 젊을 때라면 얼마간 쉬었다가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고 그런 현상을 느끼진 않는다. 젊음이란 물푸레나무의 팔뚝처럼 그렇게 믿음직하고 든든하고 행복한 것이다.
아무튼 살아 있는 생명은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생명은 움직이도록 설계가 되었고 움직이도록 만들어졌다. 설계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계에서 제대로 된 제품이 생산될 리가 없다.
앞장을 서서 흘러가는 냇물은 오염된 것들을 휘몰아 끌고 내려가고, 뒤따라 흘러가는 냇물은 그러므로 투명하다.
앞장을 서서 지나가는 바람은 자욱한 먼지들을 등 떠밀어 사라지고, 뒤따라 지나가는 바람은 그러므로 깨끗하다.
예술의 세계라고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화가는 매일 손과 옷자락이 물감으로 얼룩져야, 현악기를 만지는 연주자는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박여야, 시를 쓰는 시인은 자다가도 영감이 떠오르면 전등에 불을 켜고 일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차츰차츰 나아가거나, 최소한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일일우일신(日日又日新).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뜻으로, 나날이 발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사실 날마다 정한 일을 지켜 간다는 것은, 일일우일신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꾸준히 움직여 앞장을 서서 나아가는 사람이 있으므로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고 발전하는 것이다.
시인도 세상 속에서, 사람 속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다보면 자칫 마음을 다쳐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가 심신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전과 같지 않을 수가 있다. 글을 쓰는 의욕마저 상실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전될 수도 있다. 한 편의 시에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희로애락의 강을 건넌다. 그러므로 시인의 마음은 늪처럼 정체되어서는 안 된다. 항상 시인의 마음은 들꽃의 향기를 사방에 실어 나르는 바람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걸음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 권두언 <일일우일신(日日又日新)>
- 차 례 -
권두언
시인의 말
■ 특집 시
옥수수 _ 이상진
추억의 등굣길 _ 서효찬
황성 옛터 _ 한화숙
강냉이범벅 _ 전호영
콩 _ 전산우
제1부 서효찬
아침 이슬처럼
매미의 일생
고목
들꽃 예찬
무리 고수
꽃잠
고향 안부
밭 가는 소리
에밀레종
꽁이를 보내며
오월 아침에
사과가 익어가듯이
가리산 진경산수화
雪岳 靑松
득도
제2부 한화숙
섬강
네가 떠난 후
당신의 한숨
겹벚꽃
송지호
고성 능파대
내린천
횡성의 달
창바위, 멀리 있는 당신의 안식
별리
작약
나무의 기도
등대
비 내리는 밤
넝쿨장미
제3부 전호영
강원도 산나물
강원도 옥수수
강원도 시골 버스
배추밭 스키장
양반 도마뱀
남산과 신정호
이방의 초승달
길 정하기
비 개인 곡교천
온양관광호텔 사람들
희미한 길
호텔의 정원
여탕을 가다 –야근 작업
반바지를 입으니
온양온천
제4부 이상진
주일 아침
여름 밤
토요일 아침을 열며 당신께
내 친구 미루나무
시간이 말을 합니다
당신 곁이 되리라
보고 싶어 눈을 감는다
개망초 꽃처럼
원망
내 꿈은 당신입니다
돌탑을 쌓지 못하는 것은
아침 기도
참 다행이다
마음이 젖는 이유
두통
제5부 하옥이
슬프지도 않은데 왜 눈물이 나는지
구름의 고백
산상문답山上問答
여백론
당신의 노래
동귀어진同歸於盡
구름버섯
갯벌
개울
제6부 전재옥
어느 전문 산악인의 설악산 변론
가을 이야기
상천리의 봄
산에서 온 편지 1
하산
일출日出
대청봉
재산목록 1호
아름다운 사람 1 -스승님
아름다운 사람 2 -그대라는 이름의
제7부 전산우
시집을 보내려고
핸들
먼지 한 톨이라도 남는 게 있다
망치
하나만 있으면
있으나 마나
고향의 시간
손톱
모르겠습니다
나만 그런 건가
축구공
곱빼기로 행복한 사람
들꽃 향기
문제는 꽃이다
꾀산
■ 강원도 자랑 – 화천 편
화천 구만리 꺼먹다리 _ 이상진
● 동인 약력
[서효찬]
강원 인제 출생 및 인제고 졸업
한국 외국어대학교 중퇴
국가유공자 및 참전유공자
2000년도 계간 시인정신 등단
시집 : 『머물고 싶은 곳』외 3권 발간
시인정신작가회 문학상 대상 수상
시인정신작가회 회장(현)
서예 국전 입선 작가 및 무술인(武術人)
[이상진]
경북 예천 출생(소년기 강원 인제에서 성장)
금곡서원에서 한학을 수학
국문학 박사(고전 시가), 행정학 박사(정책학)
국가공무원(관리관) 퇴직
독립유공자 유족회, 광복회 이사(전)
금곡서원, 소수서원 강학 교수(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시)
詩山문학작가회, 心象문인회 회원
시집 :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 외 다수
논문 : <변형된 리더십> 외 다수
[전산우]
강원 인제 출생. 시산문학작가회 회장·편집국장 역임
한국가곡작사가협회 감사
한국문협,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신문예 회원
국가유공자(포병 장교로 베트남전 참전)
제1회 시산문학상, 제7회 한국가곡예술인상 수상
시집 :『산속을 걸었더니』『꽃 한 송이 피는 순간』등
교양서 : 『한눈에 쏙쏙 띄어쓰기』
단편 소설 :<눈물 꽃> <시렁 위의 닭둥우리> 등
가곡 작사 : <꽃 바보> <내린천 연가> 등
[전재옥]
강원 정선 출생
시산문학작가회 회원
문예비전 신인상 수상
시산문학상 우수상 수상
자연숲 전문가 1급
숲 해설가, 숲길 등산 지도사
시집 : 『산에 미친 여자』 『나무의 꿈』
『全 시인 오늘은 어느 山인가(공저)』
[전호영]
강원 정선 사북 출생
인하대 불문과 졸업
문예비전 등단
제2회 시산문학상 수상
시산문학작가회 회장 역임
출판인, 조경전문가, 시산 편집국장
시집 : 『산에서라면』『내가 만약 산정의 이름 모를 들꽃으로 태어났다면』『전 시인 오늘은 어느 山인가(공저)』
[하옥이]
한국가곡작사가협회 고문. 아태문인협회 사무총장
시집 : 『숨겨진 밤』 외 다수
단편소설 : 『찢어진 그물』 외 다수
중편소설 : 『나무는 혼자 서서 큰다』
장편소설 : 『바람이 남긴 지문』
KBS FM 위촉 작품 : 「별이 내리는 강 언덕」 외 다수
가곡집과 음반 독집 『내 영혼 깊은 곳에』 외 다수
역임 : 청파초등학교, 남부교육청, 사건25시 신문사
현재 : 월간 《신문예》 주간, 도서출판 《책나라》 대표
[한화숙]
강원 횡성 출생
시산문학작가회 회원
강원 동인지 『강원에 살으리랏다』 회원
그림 심리상담사
시산문학 등단
시집 : 『나는 아직 괜찮습니다』 출간